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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 선종 업적 및 뉴스

by souvenir2002 2025. 4. 22.

교황 선종 소식이 전 세계에 전해졌다. 교황청은 프란치스코 교황이 오전 7시 35분 정도에 자택에서 선종했다고 전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양측 폐렴 진단을 받고 입원 중 두 번의 고비를 넘겼다. 이후 다행히 병세가 점차 호전되었고 입원 38일 만에 회복 관찰을 전제로 퇴원했다. 20일 부활절 미사에 참석한 후 선종해 전 세계 인들의 안타깝게 했다.

교황-선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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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치스코 교황의 실화 바탕 영화 보러가기

프란치스코 교황의 실화 바탕 영화 두 교황

두 교황이라는 영화는 2019년 개봉작으로 지금은 넷플릭스에서 감상이 가능하다. 교황 선종 이후 다시 보기 한다면 또 다른 느낌을 받을 수 있을 듯하다.

영화 정보

교황 베네딕토 16세의 자진 사임과 그 뒤를 잇게 되는 교황 프란치스코가 교황이 되기까지의 비하인드 스토리와 우정에 관한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이다.

줄거리

2012년 베르골리오 추기경 (현 프란치스코 교황)은 베네딕토 교황으로 부터 만나고 싶다는 편지와 비행기표를 받는다. 교황에게 은퇴의사를 말하려던 베르글리오 추기경은 교황을 만나기 위해 바티칸으로 향한다.

 

2012년 베네딕토 교황은 성관련 사건에 사제들이 연루되었다는 소식 때문에 난처한 상황에 처한다. 이에 베네딕토 교황은 무능한 자신은 교황자리에서 내려오고 다음 교황을 맡을 사람으로 베르골리오 추기경을 추천한다.

 

두 사람은 명확하게 대립되는 가치관을 가지고 있는 사람으로 서로 한치의 물러섬 없는 논리를 펼친다.

 

이 두 영화는 베네딕토와 프란치스코 교황의 대립과 우정을 주로 그린 영화이다. 두 교황이 어떻게 교황이 되었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그리고 있는 다큐멘터리 영화로 한번 볼 만한 영화인 듯하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누구인가

교황 프란치스코는 본명은 호르헤 마리오 베르고글리오입니다. 1936년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태어나 2013년 3월 13일 제266대 교황으로 선출되었습니다. 그는 첫 라틴아메리카 출신의 교황이자, 첫 예수회 출신 교황입니다.

 

그는 가난한 이들의 성자인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의 길을 따르겠다며 프란치스코라는 이름을 선택했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 연혁

굵직한 프란치스코 교황의 생애를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1936년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태어남
1969년 12월 13일 사제서품 (수여 라몬 호세 카스텔라노 주교)
1973년 ~ 1979년 예수회의 아르헨티나 관구장으로 일함
1992년 1월 27일 주교서품 (수여 안토니오 쿠아라시노 추기경)
1998년 부에노스아이레스 대교구장 임명
2001년 추기경에 서임
2013년 2월 18일 교황 베네딕토 16세가 스스로 교황직을 사임
2013년 3월 13일 콘클라베에서 다수의 표를 얻으며 교황으로 선출
2025년 4월 21일 프란치스코 교황 선종88세의 나이로 바티칸 시국 성녀 마르타의 집에서 선종

프란치스코 교황은 공적으로나 사적으로나 항상 검소함과 겸손함을 잃지 않고 사회적 소수자들과 가난한 사람들에게 대한 관심과 관용을 베풀었다.

프란치스코 교황 업적

프란치스코는 가난한 자의 입장에 서서 있었던 성직자입니다.

교황청의 개혁과 투명성 강화

프란치스코 교황은 즉위 직후 바티칸 내부의 부패하고 비욜적인 문제들에 대한 강도 높은 개혁을 추진했습니다.

- 바티칸은행 감독위원회에서 매년 추기경들에게 보너스를 지급하는 관례를 폐지하였다.

- 사제 성추행 은폐에 대한 공식 사과 및 처리 규정을 강화했습니다.

- 교황청 내 회계 감사 시스템을 도입하여 재정을 투명하게 만들었습니다.

 

사회 정의와 난민과 빈곤층에 대한 포용

가난한 이들을 위한 가난한 교회를 말하며 실천할 수 있는 나눔을 강조했습니다.

- 이탈리아 중동 난민 수용 촉구

- 노숙인, 이민자, 성소수자에 대한 포용발언

- 빈곤 문제에 깊은 관심과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기후 위기와 생태 문제에 대한 가톨릭 최초의 선언

- 2015년 회칙 <찬미받으소서> 발표하여 기후위기와 환경파괴, 인간의 환경에 대한 책임을 종교적 차원에서 다루었다.

- 교황청 역사상 최초로 환경 이슈를 세계 신자 공동체의 실천과제로 제시하였다. (이 회칙은 유엔과 기후정상회의 등 국제기구에서도 인용되며 종교 지도자의 글로벌 역할을 확장시켰다.

종교 간 대회 및 평화 외교의 상징

-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슬람, 유대교, 불교 등 타 종교 지도자와의 연대를 통해 종교 간 평화 메시지를 전했다.

-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에 대해 평화를 촉구하였다.

- 중국이나 북한 등 대화를 통해 외교적인 고립에서 풀어보려 했다.

 

대한민국 방문한 교황

2014년 8월 16일 교황 프란치스코는 대한민국을 방문하였는데 이는 대한민국 역사상 두 번째의 일이었습니다. 2014년 마음 아픈 일이었던 세월호 참사가 일어났을 때 대한민국에 방문하여 추모와 기도를 하고 유가족과 만나 인사하였습니다.

아시아 주교단과 만남과 오찬을 가지고 해미순교성지 기념관 앞에서 열린 해미 순교자 3위의 기념비 제막식에 참석했다.

프란치스코 교황 장례절차

21일 교황 선종

22일 바티칸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의 입관식이 엄수됩니다.

23일 성베드로 성당으로 운구될 예정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 선종 마무리

프란치스코 교황은 가난한 자와 소수자의 곁에서 대변을 해주었고, 정치나 환경 등에도 관심이 많았던 교황이었다. 마지막까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을 멈출 것을 촉구하는 등 종교와 나라 간의 평화를 위한 메시지를 많이 보냈던 교황이었다. 프란치스코 교황 선종으로 많은 인사들이 애도를 표하고 있는 것을 보면 프란치스코 교황은 훌륭한 성직자 생활을 한 진정한 교황으로 기억될 듯합니다.